[등짐쟁이 기파리의 유랑] 석탄을 캐어 나르던 길을 걷다, 운탄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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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제이진 정기영 기자] 몇 년 전부터 겨울이 되면 sns에 색색의 플라스틱으로 만든 눈썰매를 타고 즐거워하고, 왕따나무 주변으로 텐트를 친 모습들이 올라왔다. 백패킹 성지로 알려지기 시작한 운탄고도는 해발 1,000m를 오가며 걷는 길이다. 이 길이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카지노로 유명한 하이원 호텔에서 석탄을 실어 나르던 길을 ‘하이원 하늘길’이라는 걷기 트레일로 소개하면서부터다. 당시에는 지금의 하이원 워터월드에서부터 시작해 내내 고개를 오르며 하이원 호텔에서 끝나던 코스로 얼마나 힘들었던지 밤에 자면서 다리를 닭처럼 버리적 거렸었다.

그 후로 운탄고도에는 많은 코스들이 생겨서 도보 여행자들이 자유롭게 즐겼는데 그 중 하나가 만항재에서 시작하는 길이다. 이곳을 마지막으로 다녀간 게 언제였는지 까마득하지만 만항재를 출발점으로 시작했던 그날은 눈이 허벅지만큼 쌓였던 겨울이었다. 이제는 하늘 사람이 된 형님이 무조건 가야 하는 길이라며 따라 나섰던 길에서는 정말 많은 눈을 만났다. 발자국이 난 길 옆으로 조금만 발을 디뎌도 정강이까지 푹푹 빠졌고, 길가에 제법 쌓인 눈에서는 몸을 눈 위로 던지면 움푹 들어갈 정도였다.

걷기 공지가 올라오고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고민했다. 첫 번째는 선수들 틈에 끼어 민폐 캐릭터로 참석해야 하는 체력적인 부담감, 두 번째는 눈이 귀한 겨울이라 눈이 없는 풍경의 심심함이었다. 그런데 내게 있어 이번 걷기는 두 번째의 고민이 더 많았다. 이미 내 체력을 아는 길벗들이기에 가다가 힘들면 중탈하면 되지만 여러 번 다녀왔던 길이니 그 길의 풍경이 대충 그려졌기 때문이다. 우리는 운탄고도 트래킹 전날 지인의 단골인 정선애 펜션에서 모여 일정과 차량 운영에 관한 것들을 논의했다.

걷기 전날 굳이 펜션에서 머물렀던 건 서울에서 정선까지 이동거리와 시간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약 40킬로미터 정도 되는 운탄고도를 1박 2일간 배낭을 메고 걸어야 한다는 심리적인 부담감도 있었다. 겨울 배낭은 다른 계절에 비해 무겁고, 물이 있어도 광물로 인해 취수를 할 수 없는 운탄고도의 특성상 1박 2일 동안 운용할 물까지 배낭에 넣어서 다녀야 하니 그 어떤 배낭보다 부피도, 무게도 만만치 않을 터였다. 만나면 만담에 가까운 입담들을 자랑하는 길벗들은 이날 저녁도 늦은 시간까지 만담으로 긴장감을 풀었다.

운탄고도 트래킹 당일, 여러 대의 차를 날머리인 새비재에 주차 후 차량 두 대에 짐을 쌓듯 찡겨서 타고는 들머리인 만항재로 향했다. 만항재는 정선과 태백, 영월이 만나는 고개로 해발 1,330m로 우리나라에서 차량으로 오를 수 있는 가장 높은 고개다. 운탄고도는 이곳 만항재부터 시작해 정선과 영월을 오가다가 타임캡슐 공원이 있는 정선 새비재에서 끝난다. 이 길이 알려지기 시작한 당시에 TV에서 방송하던 중국의 차마고도와 빗대어 한국에는 ‘석탄을 실어 나르던 길’이 있다며 운탄고도라고 붙여졌다.

바람 한 점 없는 만항재. 운이 좋은지 얼마 전에 내린 눈이 높은 고도 덕분에 녹지 않아 우리는 꽃길이 아닌 새하얀 눈길을 걷게 되었다. 만항재에서 혜선사까지는 내리막길로 걷는 길이 편하다. 길은 그대로인데 보았던 풍경은 마지막으로 다녀간 몇 년 전의 풍경이 아니다. 거대한 풍력발전기가 이곳 산 능선에 설치된 것이다. 트래킹하기에는 약간 더울 정도로 날씨가 좋았던 덕분에 풍력발전기가 돌지 않아 나름의 운치는 있었지만 바람이 불었다면 일정 구간까지는 저 커다란 날개가 돌면서 내는 바람의 신음 소리를 내내 들었을 터였다.


혜선사 갈림길부터는 각자의 길을 걷게 된다. 운탄고도는 산 능선의 90% 높이까지 오르게 만드는 임도이기에 일정 구간은 오르막을 올라야 하고, 자신의 등력에 맞는 걸음으로 걷게 되는 것이다. 앞에서 걷던 나는 오르막 경사가 힘들어 90 노인의 꼬부라진 허리처럼 꺾어져 걸었지만 이내 마지막이다. 걷다가 힘들면 파란 하늘을 보면서 숨을 골랐고, 다시 힘들면 신발 끝에 반짝거리는 눈을 보면서 잘 걷고 있다고 혼자 토닥였다. 겨울 산은 나목과 눈이 어우러진 풍경이 절경을 연출하는데 지금 내 앞에 펼쳐진 풍경은 이른 봄의 풍경과 비슷한 생경한 모습이다.

혼자 쳐져서 걸어도 나름 바쁘다. 내 안에서 나는 숨소리와 발끝에서 나는 뽀드득 발자국 소리 그리고 자연이 내는 결을 들으며 걷게 되니 잡생각을 할 틈이 없다. 1177갱 앞까지 오고 나니 오후의 햇살이 길게 느껴졌다. 봄이면 야생화가 지천인 길을 따라 걷느라 즐거웠겠지만 비슷한 풍경을 계속 걸으면서 거리 감각도, 시간 감각도 잊었다. 도롱이 연못을 지나 바람골인 화절령 삼거리에 도착하니 뒤처진 나를 챙겨주느라 덩달아 걸음이 늦어버린 동생이 기다리는 게 보였다. 순간 코끝 찡하게 눈물이 핑 돌았던 건 하루 종일 혼자 걸었어도 혼자가 아니었다는 위안 때문이었다.

나보다 더 뒤처진 형님들을 기다리는 동안 해가 꼼박 넘어갔다. 그리고 어스름한 가운데 썰매를 끌고 내려오는 형님은 늦는 이들이 걱정되어 배낭이라도 끌고 가신다고 오신 것이다. 그 마음 씀씀이에 또 다시 코끝이 찡해졌다. 평소에 그가 가볍게 툭툭 내던졌던 가벼운 말들은 이 순간 산화되는 느낌은 뭐였을까. 숙영지는 아직 더 가야하고, 길은 어두워졌다. 헤드 랜턴은 켜지 않고, 오로지 내 눈과 발아래 눈빛에만 의존해 걷다 보니 웅성대는 소리가 들린다. 다 왔다고 느끼는 순간 긴장이 풀리면서 오한이 왔다.

밥 먹고 자라는 일행들에게 고맙다고 말할 기운도 없이 텐트 안에서 널브러지며 침낭 안에 몸을 눕히며 그들에게 고맙고 미안하다는 말을 못한 나를 욕했다. 피곤하고 힘들었던 하루는 약간 경사졌던 잠자리에서 불편함 조차 느끼지 못했고, 잘 자고 일어나니 배꼽시계가 난리다. 새벽 동도 트지 않은 알싸한 공기 속에 텐트를 열고 커피를 마시려고 부스럭대니 하나 둘씩 컵을 들고 나온다. 지난 저녁, 길벗들에게 고맙고 미안했던 마음은 길다방으로 대신이다. 혼자 걸을 때는 느끼지 못하는, 동행이 있어 위로와 위안이 되었던 길에서의 감정은 ‘함께’라는 동질감이다. 그래서 나는 이 말을 좋아한다, 따로 또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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