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짐쟁이 기파리의 유랑] 38선을 넘나들며 피난민들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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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념의 경계선 38선 위에서의 하룻밤
통일을 위한 마음의 길 38선 숨길
이광재 티모테오 신부를 기리는 티모테오 순례길

[에스제이진 정기영 기자] 새벽 어스름한 시간. 눈을 비비고 텐트 밖으로 나와 임도 한쪽에 쪼그리고 앉아 소변을 보는데 마주 보이는 한천산에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내려오는 게 보였다. 수십 명의 사람이 일렬로 내려오는 행렬에는 말소리도, 발자국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들은 오로지 맨 앞의 흰 옷을 입은 사람을 따라갔으며, 그들 역시도 흰색의 무명천 옷을 입고 있었다. 밤새 참았던 소변이 어느새 찔끔거릴 즈음 머리가 멍해졌다. 눈을 뜬 건지, 잠을 잔건지 모를 상황에 누군가 나를 부르는 소리에 모로 누웠던 몸을 똑바로 눕히니 진즉에 날이 밝았는지 텐트 밖이 훤했다.

길은 양양의 38 휴게소부터 시작되었다. 평화를 상징하는 벽화가 그려진 지하보도를 지나 ‘잔교리 38 평화마을’에 이른다. 마을 중심으로 흐르는 잔교천을 따라 남북으로 갈린 잔교리는 전쟁으로 인해 다니던 학교와 마을이 갈리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벌어졌던 곳이다. 남쪽 방향을 가리키는 파란색 리본과 북쪽 방향을 가리키는 붉은색 리본. 이 시그널이 38선 숨길을 알려주는 이정표이다. ‘38선 숨길’은 전쟁으로 인해 생긴 비극적인 과거 위에 평화를 빌고 통일을 위한 마음을 담아 양양군에서 만든 길로 소통이 이루어지는 들숨, 날숨이 되기를 바라기에 ‘숨길’이라는 명칭이 붙었다.

이미 해가 머리꼭지에 올라 있어 잔교리에서 대치리까지 가는 길은 지글지글 끓어오르는 지열로 뜨거웠다. 아스팔트 도로 끝 임도로 접어들고 나서야 나뭇가지가 내어주는 그늘에 턱밑까치 차오르던 뜨거운 숨이 편해졌다. 그렇게 한참을 임도를 걸어 명지리에 들어섰다. 강원도 청정 계곡인 법수치 계곡으로 들어서는 길목이다. 앵두나무가 많아 해마다 5월이면 앵두나무 축제를 하는 이 마을은 38선 숨길과 티모테오 순례길이 만나는 곳이다.

우리는 곧 순례길에 접어들 예정이기에 마을의 유일한 식당인 향림면옥에서 송이 칼국수로 뱃속 허기를 달랬다. 티모테오 순례길. 양양 본당의 제3대 주임 신부였던 이광재 티모테오 신부가 공산당의 삼엄한 감시 속에서 남하한 북한 동포들을 숨겨 주고 본당 교우들을 통해 무사히 38선 이남으로 내려갈 수 있도록 도와주다가 순교한 것을 기리기 위해 양양 성당에서 만든 길이다. 마을 뒤편 한천산으로 들어서는 초입에 순례길의 표시인 예수 14처 중 마지막 14처 십자가를 만나면서 순례길을 역방향으로 걷는 여정을 시작하며 양양 시내에 다다를 것이다.

한천산의 임도를 걷는 내내 끝도 없는 초록의 향연이 길가에 펼쳐졌다. 높은 산은 아니지만 이 산의 넓이는 여자들 한복 치마폭처럼 넓었다. 지난 가을 송이 채취 때 쳐놓은 금줄은 느슨한 채로 여전히 이 산에 구역을 만들 듯 쳐져 있지만 송이 계절이 아닌 탓에 인적이 거의 없는 지금은 야생동물이 주인인 산이다. 간혹 나오는 멧돼지 식흔은 생각보다 많고 깊어 보는 순간 쫄보가 되어 스틱을 탁탁 치며 쇳소리를 내 ‘인간이 이 산에 왔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을 잊지 않았다.

임도를 걷는 사이사이 38선을 알리는 표지목을 만났다. 정치적이고 이념적적인 38선이 이곳에서는 단지 이정표에 불과했다. 우리는 지금 이 38선을 중심으로 때로는 북쪽으로, 때로는 남쪽으로 오르내리며 걷는 중이다. 오늘 저녁은 이 산 어디 메에서 머물 예정이다. 임도를 걸었던 경험상 산의 한쪽 면을 깎아내고 8부 능선쯤 올라가는 임도는 조망이 좋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리라.

드디어 전망이 탁 트인 곳에 닿았다. 역시나 38선 표지목이 있다. 게다가 넓기까지 하니 숙영지로는 최고의 장소였다. 걸음을 멈추기에는 좀 이른 시간이었지만 이곳에서 머물 수밖에 없는, 아니 머물러야 하는 이유는 딱 하나, 우리가 언제 또 ‘38선 위에서 잠을 자보겠는가’였다. 숙영지는 정해졌지만 무작정 텐트를 펼치지는 않는다. 사람들이 오가는 곳은 아니지만 ‘해가 내려갈 때쯤에 집을 짓고, 사람들이 오가기 전에 집을 철수하자’는 나름의 원칙은 이곳에서도 여지없이 적용시킨다.

38선 표지목을 중심으로 넓을 임도 한쪽에 쪼르륵 하루 저녁을 머물 집을 지었다. 지금 우리가 머무는 곳은 북쪽이 될 수도 있고, 남쪽이 될 수도 있으며, 38선 한 가운데일 수도 있다. 생애 처음인 이 생소한 경험은 정치적인 이념이라고 하기에는 애매한 무엇인가 묘한 쾌감과 이질감을 동시에 느낀다. 돌을 옮겨 테이블을 만들고 배낭에 넣어온 음식들을 올리니 자연 식탁이 따로 없다. 미세먼지로 인한 흐릿한 조망이 만족스럽지는 않았지만 산을 잘 아는 일행들이 중첩된 능선을 가리키며 ‘저기는 설악산, 저기는 점봉산..’등을 얘기해 주니 앉은 자리에서 이곳이 주는 풍경을 실컷 누린다.


어둠이 내려앉았다. 그나마 희끄무레 보이던 조망도 깜깜한 밤에 묻혔다. 별이라도 보일까 싶어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지만 밤새 비가 안 내리면 다행이라고 할 정도로 하늘에는 구름이 가득하다. 여름이면 흔하디흔한 홀딱벚고새의 울음소리조차도 들리지 않는 적막강산의 시간. 그르렁대며 하루를 마감하는 소리가 각자의 텐트 밖으로 새어 나왔다.

38선에서 잠을 자고 일어난 아침. 새벽 꿈 이야기를 일행에게 했더니 “그들과 눈이 마주쳤다면 너는 지금 이 세상 사람이 아닐 거다”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 날 새벽, 내가 보았던 사람들은 38선을 내려오는 피난민들이었다. 이념으로 인해 갈라진 이 땅에서 종교적인 신념을 위해 목숨을 걸고 내려왔던 그들은 그들의 신앙을 지켰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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