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찾아가는 남도여행

- 여행을 탐하다 3월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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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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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병이죠. 겨울 지나 봄이 다가올 때면 늘 앓았어요. 민들레 풀씨들 날고, 꽃들이 달빛 속에서 봉오리를 벗을 무렵. 푸른 자전거를 타고 벚나무 아래를 지나갈 때 여인의 젖꽃판 같은 벚꽃, 그 꽃잎들이 내 입술 위에 내려앉곤 했어요. 그럴 때마다 난 달아올랐고, 수정하고 싶었어요. 나를 온통 뒤흔드는 원인인 당신, 봄이라는 계절과.

그러나 봄과의 수정은 가당치 않은 욕망이었어요. 어떤 종교도, 어떤 지식도, 어떤 스승도 ‘봄과 수정하는 방법’을 알려주지 않았죠. 그래서 나 홀로 숲에 앉아 골똘히 머리를 쥐어짜보기도 했지만 봄과 수정할 수 있는 방법은 찾아낼 순 없었어요. 그래서 차라리 봄이 나 같은 ‘동물’이었으면 하고, 혼자 읊조리곤 했어요. 당신을 수정하여 당신과 수정하고 싶다,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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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요. 봄을 수정하여 봄과 수정하고 싶은 건 내 오래된 욕망. 여전히 나는 봄과 수정하는 방법을 모르지만 3월이 오면 늘 헛된 욕망에 빠지곤 해요. 당신의 품 안에서 더 오래 머물고 싶다고. 나는 한시라도 빨리 봄을 만나 당신의 눈(Bud)과 내 눈(Eye)을 비비고 싶어 남쪽으로 내려가기로 했어요. 내가 머무는 서울까지 당신이 오길 기다리다간 함께 할 수 있는 날들이 너무 짧으니까요. 수도권을 벗어나자 기울은 햇살이 길의 굽이에 반응하며 내 볼을 간질이고, 나는 쉬지 않고 길을 달려 땅끝 마을 아름다운 절, 미황사에 닿았어요. 늦은 밤이었지요. 피곤한 몸을 요사채에 눕히고 잠이 들었어요. 당신과의 만남을 기대하며.

뎅. 새벽 예불을 알리는 범종이 우는 순간 잠이 깼어요. 그래요. 내가 잠든 방은 바로 범종 바로 옆방이었죠. 범종이 울리고, 방 전체가 울리고, 천지가 울렸어요. 그리고 범종소리가 멎자 토닥토닥 빗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어요. 봄비. 나는 문득 신중현이 만든 노래, <봄비>를 떠올렸어요. “나를 울려주는 봄비 / 언제까지 내리려나 / 마음마저 울려주어…….” 이 노래, 참 여러 가수들의 목청으로 들었더랬죠. 김추자, 박인수, 이정화, 장사익, 웅산, 박완규, 심지어 나미가 부른 <봄비>까지.

목청이야 김추자가 섹시하고, 장사익이 장중하지만 가장 아련하면서 미스터리한 봄비는 가수 이정화가 부른 <봄비>였어요. 1960년대 말, 월남에서 노래하고 싶다며 떠난 후 소식이 끊긴 그녀. 그렇게 비행기에 오르는 한 여인의 모습이 자꾸만, 자꾸만 떠오르는데. 이 봄도 그렇게 훌쩍 떠나버리지 않을까, 이불을 젖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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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단을 올라 절 마당에 섰습니다. 산사의 짙은 운무 사이로 가는 한 방울, 두방울 흩날리는 이것은 빗방울인가, 꽃잎인가? 대웅보전 안에 들어서니 불상이 나를 내려다보며 대답하고, 되물었습니다. 빗방울도 아니고, 꽃잎도 아니다. 물건도 아니요, 마음도 아니다. 이것이 무엇인가? 나는 답을 할 수 없어 바다 건너 보길도로 달아났습니다.

한번 피어나기 시작하면 정신 못 차리게 한숨에 피었다가 흔적 없이 사라지는 봄꽃들에게 가장 먼저 밀서를 보내는 이가 보길도에 산다고 들었어요. 한겨울 눈밭 속에서도 피는, 보길도 동백. 보길도 동백은 전국의 봄꽃들에게 편지를 겨울 내내 보낸다지죠. 한 겨울에 핀 내가 다 지고 나면 네가 얼른 피어달라는 당부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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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끝에서 출발한 배는 노화도 선착장에 닿았습니다. 나는 내리자마자 예송리 몽돌 해변으로 달려갔지요. 외투를 열어젖히는 센 바람, 나는 오래 바다가 보고파 몽돌 해변에 철 이른 텐트를 쳤지요. 비록 세상에서 가장 얇고 작은 집 -텐트 – 이지만 나는 그 아늑한 둥지에 앉아 꽃잎처럼 가벼운, 꿈을 꾸었어요. 그 꿈속에서 봄, 당신이 나비면 나도 나비였고, 당신이 새면 나도 새였으며, 당신이 물고기면 나도 물고기였습니다.

해지기 전 동백을 만나러 보길도를 한 바퀴 둘러 공룡알 해변으로 갔습니다. 언젠가 그런 얘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동백은 두 번 핀다고. 나뭇가지에서 한 번, 떨어진 자리에서 또 한 번. 제 피었던 자리에서 수직으로 내리꽂히며 다시 피는 붉은 꽃. 그건 마치 찰나를 지나가는, 붉은 별똥의 궤적 같습니다. 햇살이 파도 위에 하얗게 내려앉는 사이, 붉은 동백이 내려앉습니다. 수면 위에, 공룡알 위에, 내 입술 위에도. 먼 길에서 돌아온 애인을 다시 만난 듯 나는 설레고, 달아오르고, 어느새 사랑이 마음에 고여 차오릅니다.

아, 참 아름답군요. 당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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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 꽃 사이의 길은 아름다웠습니다. 지난 내 삶도 그러했지요. 행복했습니다. 당신이란 꽃, 사이를 지나며. 그 환희의 순간이 온몸을 흔들고 난 후 바라본 세상은 모두 다 꽃이었습니다. 보족산도, 바다도, 어촌도, 공룡알도, 컹컹 짖어대는 강아지 소리도…… 봄, 당신이 닿은 곳마다 모든 사물들은 제 스스로 ‘꽃’이었습니다. 그렇게 피고 있었습니다. 세상의 꽃들뿐 아니라 당신이 내 속에 피어나는 순간, 순간이 다 꽃이라며. 타닥타닥 타다다닥, 한순간의 불길이 영원으로 번지듯. 그건 또한 ‘할’이었습니다. 춥고 어두웠던 겨울 내내 끌어안고 지냈던 일천칠백 공안(公案), 다 풀었다고 할할 할할 할할할 터트리는. 아, 모든 게 꽃이고 사랑이었습니다.

봄입니다. 그리고 꽃은 또 피고, 또 지겠지요. 그리고 또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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