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 밤의 꿈같은 화진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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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전국 해변 어디라도 피서객들로 가득하지만 휴가시기를 한 박자만 늦추면 썰물 빠지듯 한산해진 해변에서 나만의 바다를 가질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각 섬에 딸린 해수욕장들과 휴전선 인근 명파, 초도, 마창진, 화진포 해수욕장이 그런 곳이지요. 이 땅엔 해변 보다 호수 때문에 더 이름이 난 해변(경포호를 끼고 있는 경포대 해수욕장, 송지호를 끼고 있는 송지호 해수욕장, 화진호를 끼고 있는 화진포 해수욕장)이 있는데 특히 화진포 해수욕장은 면적 72만평, 울창한 송림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국내 최고 자연석호와 잇닿아 있는 해변입니다.

조선시대 이중환은 <택리지>에서“동해안 모래는 눈같이 희고 사람이나 말이 밟으면 소리를 내는데, 그 소리 쟁쟁하여 마치 쇳소리 같다. 특히 간성과 고성 지방이 그렇다”고 말했는데, 화진포 모래는 그 중에서도 특히 곱기로 유명하지요. 고운 모래, 푸른 바다, 아름다운 호수, 솔숲이 어우러진 해변. 아마도 그런 절경이기에 일찍이 남북의 권력자(이승만, 이기붕, 김일성)들은 화진포 주변에 별장을 지었을 겁니다. 그래요, 당장 화진포에 나의 별장을 짓진 못하더라도 세상에서 가장 얇고 가벼운 집, 텐트는 치고 말겠다는 일념으로 동해를 향해 길을 떠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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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진포로 가는 길, 진부령을 넘으면 금강산 끝자락 건봉산 감로봉 동남쪽에 자리 잡은 천년고찰 건봉사도 만날 수 있습니다. 한국전쟁으로 폐허가 되기 전 우리나라 4대 사찰이자 31개 본산 중 하나로서 600칸에 승려만 700여명이 넘었다지요. 심지어 임진왜란 땐 승병이 6,000명이 넘게 묵었던 곳이라고 합니다. 휴전선이 생긴 이후엔 민간인통제구역이 되었는데 석가탄신일에만 민간인 출입이 허용되다가 전면출입이 허용된 건 1989년 이후죠.

한국전쟁 당시 모든 전각이 타버리고, 유일하게 타지 않은 채 남은 불이문 곁 팽나무의 수령은 500년. 팽나무는 옛날의 영화를 기억하고 있겠지요? 대웅전과 옛 극락전 터를 연결하는 다리 이름은 능파교, 능파는‘물결 위를 가볍게 걷는다’는 뜻으로 ‘미인의 가볍고 아름다운 걸음걸이’를 일컫는다고 하니 능파교를 건널 땐 사뿐사뿐 최대한 아름다운 걸음으로 지나가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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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봉사 적멸보궁으로 올라가면 하얗고 풍성한 꽃이 맞이할 것입니다. 부처님 머리를 닮았다, 하여 불두화라 부르는 꽃인데 수국처럼 탐스럽고 예쁘죠. 적멸보궁 뒤뜰엔 사명대사가 봉안했다는 진신치아사리탑도 있습니다. 건봉사는 앙코르 와트의 해자를 닮은 연못, 요사채의 꽃밭, 범종 누각 옆 배롱나무 등등 조경이 무척 아름다운 사찰이랍니다.

건봉사에서 내려와 동쪽으로 향하면 곧 민간인 통제구역인데, 신원만 확인되면 통과시켜줍니다. 냉천리 유격장을 지나갈 땐 까까머리 청년들의 우렁찬 기합소리도 들을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민간인통제구역을 빠져나오면 마창진 해수욕장에 닿지요. 대한민국 최북단 해수욕장, 여기서 해안 따라 남쪽으로 내려가면 대진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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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 언덕 위에 세워진 하얀 등대가 동해를 내려다봅니다. 대한민국 최북단 항구, 최북단 유인등대. 주변 무인등대를 원격 관리하는 곳이기도 하지요. 등대 높이는 자그마치 31미터, 꼭대기엔 일반인 출입이 가능한 전망대가 있답니다. 나선형 계단을 따라 전망대로 올라가면 마창진, 대진항, 초도로 이어지는 긴 해안선과 망망대해가 펼쳐집니다.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은 정말 감동적이지요. 일몰 후 등대는 12초 간격으로 반짝입니다.

드디어 화진포에 도착하면 바다와 호수 사이 솔밭 야영장에 텐트를 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최북단 해수욕장들 중 24시간 개방되는 곳이라 길고 한적한 해변에 연인과 단 둘이 누워 밤하늘 바라보며 파도 소리를 들을 수 있어요. 해변의 길이는 무려 1킬로미터나 되고 폭도 100미터가 넘으니까요. 만약 달이 보이면 아무 말 없이 그저 바라보세요. 막스 피카르트가 <침묵의 세계>에서 해 준 말을 기억하며.

사랑 속에는 말보다는 오히려 침묵이 더 많이 들어 있다.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는 바다 속에서 나왔다. 그 바다는 침묵이다. 아프로디테는 또한 달의 여신이기도 하다. 달은 그 금실의 그물을 지상으로 내려뜨려 밤의 침묵을 잡아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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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침묵이 버겁다면 스마트폰으로 음악을 트세요. 헬렌 메릴의 <돈 익스플레인 DON’T EXPLAIN>과 같은 노래 – 우리가 사랑하는 이유를, 우리가 여기 있는 이유를 설명하려고 하지 마세요. 지금 이 순간이 대답이잖아요 – 에 귀를 기울이며 물끄러미 밤하늘을 바라보는 거죠. 그러다 사랑이 당신의 심장을 가득 차오를 때 즈음엔 저도 모르게 춤을 추고 싶어질지도 몰라요. 그러면 알 파치노가 주연한 <칼리토의 길>의 마지막 장면 – 한들한들 여인이 남국의 해변에서 어린아이들과 춤을 추며 석양에 물들어 가는 모습 –처럼 천천히 일어나 스텝을 밟으며 달빛에 물들어 가는 거죠.

마치 한여름 밤의 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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